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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6. 10. 6.제12호구독하기지난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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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근필 작가박근필 작가

세지 않는다고 시간이 늘어나지는 않는다

보호자에게 아이 나이를 물으면
대개 이렇게 답이 돌아온다.
"일곱 살이요."
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인다.
"사람으로 치면 아직 젊은 거죠?"

나는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수의사다.
그 물음 뒤에 있는 마음을 안다.
아직 멀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다.

나도 그랬다.
열일곱 해를 함께한 고양이 솜이가
어디쯤 와 있는지 세어 보는 일을 미뤘다.
세어 보는 일은 아프다.
그래서 미룬다.

그런데 안 센다고 시간이 늘어나지는 않는다.
세지 않으면 준비할 때만 놓친다.

계산은 어렵지 않다.
그 아이 품종의 평균 수명을 찾고,
지금 나이를 그 수명으로 나눠 본다.
0.75를 넘었다면
그 아이는 이미 삶의 마지막 4분의 1에 들어와 있다.

솜이의 시간은 이제 다 세어졌다.
지금 내 곁에는 시추 호동이가 있다.
이 아이의 시간은 아직 세는 중이다.

세어 본다는 건 미리 슬퍼하자는 말이 아니다.
남은 날을 알아야
그 날들을 어떻게 쓸지 정할 수 있다.

오늘 우리 아이의 나이를 한 번 세어 보고,
그 아이와 꼭 해 보고 싶은 일 하나를
적어 두면 어떨까.

수의사 · 작가 박근필
펫로스 치유 글쓰기(펫러스, PETLUS)
펫러스(PETLUS) 쉼터
https://tothemoonpark-cpu.github.io/pilacademy/petlus-shelter.html

이 글의 저작권은 박근필 작가님에게 있으며,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·전재·재배포하거나 변형할 수 없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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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굽는 계란빵글굽는 계란빵

아이에게서 배우는 삶, 자전거 바퀴 위에 올려진 성장

요즘 아들은 자전거에 푹 빠져 있다.

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.

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조마조마한 불안이 가라앉지 않는다.

원래 ‘두 발 달린 것’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믿는, 걱정 많은 엄아이기 때문이다.

어느 날 아들에게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.

“위험하니까 도로에서 타는 로드 자전거는 절대 안 사줄 거야!”

차갑고 무섭게 쏘아붙인 내 말에 아이가 울고 떼를 쓸 줄 알았다.

그런데 아들은 뜻밖의 말을 차분하게 건넸다.

“엄마, 자전거는 정말 좋은 운동이야. 위험한 순간도 있지만, 안전 규칙을 잘 지키며 타면 괜찮아.”

그 말을 듣는 순간, 마음이 묘하게 가라앉으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.

마냥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던 아들은 떼를 쓰거나 울음으로 고집을 부리는 대신,

논리적인 ‘말’로 엄마를 설득하고 있었다.

기분 나쁜 표현도, 기분 좋은 표현도 이제는 모두 스스로 정리해 말로 전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.

‘나는 아이보다 못한 엄마인가.’ 순간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.

위험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막아서고 감정적으로 소리부터 쳤던 나와 달리,

아이는 훨씬 더 성숙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고 있었다.

우리는 흔히 부모가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.

하지만 때로는 아이가 부모의 스승이 된다.

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가는 아들을 보며,

나 역시 더 깊어지고 배워야 할 부모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.

아이의 자전거 바퀴가 앞으로 나아가듯, 우리 부모의 성숙도 그렇게 함께 굴러가는 중이다.

이 글의 저작권은 글굽는 계란빵님에게 있으며,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복제·전재·재배포하거나 변형할 수 없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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억만장자 메신저억만장자 메신저

AI 시대에는 다시 ‘한 사람의 깊이’가 중요해진다

​산업혁명 이전에는

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 많았다.

​

장인이 재료를 고르고,

​

직접 만들고, 다듬고, 완성했다.

​

시간은 오래 걸렸지만

​

그 안에는 만든 사람의 취향과 기술이 그대로 남았다.

​

산업혁명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.

​

더 많은 물건을 빠르게 생산하기 위해

​

공장제와 분업이 확대됐다.

​

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맡기보다

​

각자 잘하는 일을 나누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.


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

​

다시 한번 생산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.

​

예전에는 글 하나를 만들더라도

​

기획하고, 자료를 찾고, 편집하고, 디자인하는 일을

​

여러 사람이 나눠야 했다.

​

이제는 한 사람이 AI를 활용해

​

그 과정의 상당 부분을 직접 처리할 수 있다.

​

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

​

다시 개인의 전문성이 중요해지고 있다.

​

AI를 쓰는 것 자체는 점점 쉬워진다.

​

누구나 비슷한 글을 만들고,

​

이미지를 만들고,

​

콘텐츠를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.

​

문제는 그다음이다.


생산량이 넘쳐날수록

​

사람들은 단순히 잘 만든 것만으로는

​

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.

​

누가 만들었는지,

​

어떤 경험에서 나왔는지,

​

왜 이걸 만들었는지까지 보게 된다.

​

오래 쌓아온 취향과 경험,

​

자기 분야에 대한 깊이,

​

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정성이

​

오히려 더 귀해질 수 있다.


AI는 많은 일을 대신해줄 것이다.

​

하지만 그럴수록

​

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사람의 안목과

​

자기만의 이야기는 더 중요해질 것 같다.

​

대량 생산의 시대에는

​

빠르고 싸게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었다면,

​

생산 과잉의 시대에는

​

'왜 이것을 만들었는가'가 다시 중요해진다.

​

AI가 일을 대신해줄수록

​

사람은 더 사람다워져야 한다.

​

앞으로 살아남는 작품에는

​

정성과 서사가 있고,

​

그 사람만의 손길이 남아 있을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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